• 협회소개
  • 연구와 칼럼
  • 소통과 문의
  • 유튜브 강의
연구와 칼럼

증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권요셉 | 2026-11-03 12:00 | 조회 2

분열분석은 증상을 하나의 원인에서 발생한다고 보지 않는다. 증상은 배치에서 발생한다. 프로이드가 증상의 원인을 콤플렉스로 봤다면 가타리는 증상의 원인을 배치로 보았다. 증상은 배치 안에서 발생하며, 배치의 구성 방식에 따라 생성되거나 해소될 수 있다. 증상은 개인의 내면에 고정된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욕망적 흐름들의 배치 속에서 나타나는 산물이다. 배치를 굳이 정의하자면,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해서 전체를 이루는 방식이다. 배치에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 등의 사회적 관계들, 다양한 욕망들, 사회적 환경, 물리적 환경, 사용하는 언어 체계, 물질들, 욕망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흐르게 하는 요소들, 소속된 집단, 시간, 장소 그리고 이념을 모두 포함한다. 증상이 배치라는 의미는 증상을 둘러싼 이러한 배치적 요소들을 모두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요소들이 어떤 형태로 배치 및 배열되었는지에 따라 특정한 표현 즉, 증상이 나타난다. 

이념의 충돌은 욕구나 욕망의 충돌보다 더 큰 타격을 준다. 가타리는 이념을 개인이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민족, 계급, 성별 등의 주어진 코드에 따라 살아가도록 조건화하는 '망상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망상은 단순히 병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고 욕망을 조직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이다. 가타리가 들뢰즈와 함께 쓴 ‘안티오이디푸스’에서는 아예 이념 대신 망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망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했다. 가타리는 이념을 외부 권위에 종속시키는 하나의 배치로 보았다. 그래서 이념적 재현(representation) 체계는 주체의 표현과 존재의 다양성을 병리화하거나 억압한다. 이념은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사회적 욕망을 추구하거나 생산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적 이념은 돈을, 기독교적 이념은 희생을 추구하고 생산한다. 

가타리는 증상이 발생하는 배치에 대하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의 이중구속 이론을 자주 언급했다. 이중구속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정하며 발생하는 딜레마를 의미한다. 베이트슨은 조현병자들의 문화를 연구하다가 ‘부모들이 자녀에게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놀지도 말고 공부도 하지 말라는 등 자녀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몰아 넣을 때, 정서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타리는 베이트슨의 이중구속 이론을 확장하고 재구성하여 배치 이론을 발전시켰다. 가타리의 관점에서 이중구속은 하나의 배치이며, 욕망의 통제 장치다. 베이트슨의 이론처럼 단지 두 개의 메시지만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욕망과 다양한 메시지들이 충돌하는 배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구속을 넘어 다중구속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이중구속은 ‘기계적 배치 속에서 발생하는 욕망의 고립과 차단’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베이트슨은 가족 내에서 이중구속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았지만 가타리는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욕망들이 다중구속 상태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이념이 혹은 모든 이념들의 이중구속이 증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구성한 이념과 상관 없이 개인이 분자적으로 갖고 있는 이념도 있다. 신념이라고 부르든, 가치관이라고 부르든, 개인이 생성하는 이념들은 사회가 구성한 이념과 굳이 일치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개인의 이념이 사회적 이념의 권력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내가 아무리 나 혼자만의 굳건한 신념을 새롭게 만든다고 해도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영향받은 종교적, 정치적, 윤리적, 자본주의적 이념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이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이념과 나의 분자적 욕망 사이에서 혼돈과 질서의 상호침투를 통해 개인적인 이념들이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이념은 옳고 그름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성된 이념은 답을 정하지 않고 질문으로 사유한다. ‘내 신념이 맞을까?’. ‘내 행동이 내 가치관에 맞는 걸까?’, ‘내 신념이 문제를 만들고 나를 혹은 가족을 더 힘들게 하면 어쩌지?’ 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이 내 신념 혹은 가치관을 타고 흘러간다. 그러면서 내 이념들은 다양화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변화 가능하고 서로 연결해 나가는 여러 이념들이 내 안에 존재하는데 이런 것이 분열분석적인 이념들이다. 분열분석적 이념이란 질문하는 것이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 방식은 이념을 유동적이게 만든다. 답은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지만 질문은 상황에 따라 여러 길을 만들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질문이 나오고 질문은 이념을 확장하거나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또한 분열분석적 질문은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답이 있는 무엇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과 과정을 보기 위해 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과 가상적인 생각을 통해 결과적으로 하나의 이념으로 나타난 형태로서가 아니라 가장 작은 분자적 형태의 이념에 접근한다. 이렇게 이념을 분열시키면, 이념을 실천하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그 이념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