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가타리에게 매일 아침 그의 생각을 종이에 써두고, 그것을 퇴고도 수정도 하지 않은 그대로 자신에게 보내도록 했다. 가타리가 메모를 송달하면, 들뢰즈는 그의 메모에 담긴 아이디어들을 씨앗으로 삼아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여 키워냈다.
『안티 오이디푸스』의 원고를 직접 기술한 것이 들뢰즈이기 때문에 『안티 오이디푸스』의 아이디어의 대부분이 들뢰즈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들뢰즈 스스로가 여러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가타리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사유의 지평을 넓혔다고 고백했다. 들뢰즈 전기 작가인 프랑수아 도스(François Dosse)는 들뢰즈가 가타리를 만난 후 스스로 '가타리화(Guattarized)'되었다고 인정할 만큼 사유 방식과 문체가 급격하게 변형되었음을 기술하고 있고, 1984년 3월 30일 우노 쿠니이찌(宇野邦一)와 가타리가 데이송(Draveil) 마을에 위치한 가타리의 자택에서 나눈 대담 기에 의하면, 가타리는 "질(들뢰즈)은 '나는 보통의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언표행위배치는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는 이론적 장치를 만들어 낼 정도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는 가운데 제가 그를 전통적인 지평에서 끌어냈습니다"라며 자신의 학문에 대한 주체성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안티 오이디푸스』에 나타난 기계 개념과 분열분석 개념, 비기표적 기호계 등의 용어들은 가타리가 들뢰즈를 만나기 전인 1969년 이미〈기계와 구조(Machine et structure)〉라는 획기적인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들뢰즈는 이 논문을 읽고 가타리의 '기계' 개념에 깊은 감명을 받아 가타리에게 공동저술을 제안했다.실제로 들뢰즈가 사용한 가타리의 메모 원문은 (The Anti-Oedipus Papers)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가타리가 들뢰즈에게 보낸 수많은 메모와 논설들은 단순한 아이디어 조각이 아니라 이미 고도의 이론적 정밀함과 도표적 구상을 갖춘 텍스트들이었다.